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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당간마당)2015.0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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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
신철영 아이쿱생협 친환경유기식품클러스터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신철영 회원 인터뷰>

 

우리는 경실련에 몸을 담고 있어, ‘신철영’이란 이름 뒤에 중앙경실련 전 사무총장 혹은 부천경실련 전 공동대표라는 직함을 붙이는 것이 더 익숙하다. 하지만 그는 경실련 운동의 큰 어른이기 전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충북에서도 많은 조합원을 갖고 있는 아이쿱생협을 만든 장본인이다.

 

아이쿱은 구례자연드림파크에 이어 괴산군에도 자연드림파크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 자문 역할을 하고 추진을 돕기 위해 신철영 집행위원장은 아예 괴산에 정착을 하였다. 괴산군 문광면에 새롭게 마련한 자택을 방문하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 집이 멀리 보였다. 대략 그 집이란 것을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신철영 위원장과 사모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경실련과 시민운동의 옛날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신철영: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운동의 정점인 동시에 분열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 중앙경실련은 오랜 고민 끝에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후보자정보공개운동을 전개하였다. 다만 지역경실련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낙천낙선운동에 참여했었다.


신철영: “낙천낙선운동을 계기로 보수 진영에서 각성(!)을 하게 되었다. 이후 보수적 성향의 시민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여, 시민단체가 진보와 보수로 분열되었고, 우리사회가 찬반논쟁을 넘어 시민단체마저 분열되는 모양새를 띄게 되었다.”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보수진영에서 만든 ‘무늬만’ 시민단체에서 반대의견을 내면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주장은 희석되고 힘을 잃게 되었다. 시민들은 시민단체끼리 싸우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시민단체가 정치적 색깔을 갖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경실련 고유의 비정파성과 합리적 시민운동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한 채 보수-진보 대결 구도에 함께 휩쓸려 버린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철영: “경실련을 지지하는 사회적 원군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시민’밖에 없다. 경실련은 대안을 제시하는 합리적 운동을 표방했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그 어떤 시민단체보다 치열하게 했다. 하지만 중앙경실련은 정책이슈에 대응하는 것은 꽤 잘하지만, 시민들과 함께 하는 운동에는 약하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그걸 하지 못한 채 사무총장 임기를 마쳐야 했던 아쉬움을 토로한다.

신철영 위원장은 1993년 부천경실련 창립과 함께 했지만, 그 해에는 아이쿱생협의 뿌리 중 하나인 부천한우리생협 창립도 주도하였다. 지금의 아이쿱생협을 보면 상상이 안 가지만 당시엔 고전을 면치 못했고 해마다 결산을 하면 적자가 났었다. 결국 1997년 6개의 빚 많고 작은 생협이 모여 ‘21세기 생협연대’를 조직하였고 이듬해 아이쿱생협연합회를 설립했다.


신철영: “정말로 망하기 직전의 생협들이 뭉쳤다. 그 때 규모가 큰 생협들은 별도의 연합회를 출범시켰는데, 거기에 끼지도 못한 올망졸망한 생협 6개가 모인 것이다. 활로를 찾으려면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이쿱은 물류는 집중하여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줄인 반면, 조직은 분할하여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하였다. 각각의 생협 조직 규모를 작게 유지한 것은 나중에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기발한 발상이었다고 한다. 조직이 너무 크면 조합원 참여의식이 약해지고 관료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12월 말 아이쿱생협에 큰 위기가 온다. 시흥 물류센터에 화재가 발생하여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생협이 다시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협동조합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 (왼쪽부터) 신철영, 김은혜(사모님)

 

신철영: “실무자에게 당장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현금 2억 5천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이트보드에 중앙연합회 이사는 1인당 1천만원을 내고 큰 조합은 5백만원, 작은 조합은 2백이든 3백이든 형편껏 내고, 실무자들도 한달치 월급을 반납하기로 했다. 단, 돈을 빌리는 것으로 했고, 1년 뒤에 이자를 쳐서 갚겠다는 조건이었다.”


실제로 1년 뒤 조합원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 그때부터 아이쿱에는 돈이 필요하면 조합원에게 차입한다는 전통이 생겼다. 구례자연드림파크도 그렇게 해서 자금을 모았고, 현재 건설중인 괴산자연드림파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류센터 화재는 아이쿱생협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철영 위원장이 괴산에 터를 잡은 것은 괴산자연드림파크 조성을 위한 자문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이쿱만의 발전이 아닌,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또 그걸 위해 스스로 괴산에 정착하였다.


자연드림파크는 건물을 잘 짓는다는 대원칙을 갖고 있다. 공장 같은 공장이 아닌, 대학캠퍼스 같은 공장을 짓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실제로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그런 아이쿱의 꿈을 확인할 수 있다. 괴산자연드림파크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커진다.


신철영: “우린 약하고 별 볼일 없는 조직들이 서로 힘을 합쳐 시작하였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내부 혁신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쿱생협은 우리가 약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다른 약자를 도우려는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모든 조직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선 아이쿱생협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어려웠던 시절 품었던 초심을 잊지 않으면서, 부단히 내부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 충북경실련이 가져야 할 자세와 가야할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 | 이병관 정책국장

Posted by 경실련 충북경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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